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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정공>순원위공휘의정묘지(淳原尉公諱義貞墓誌)
淳原尉公諱義貞墓誌 公諱義貞字叔幹姓趙氏淳昌望族祖 贈户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諱智崗考慶州府尹諱琛遠祖亦皆鳴世母禹氏敦寧府都正允功女辛巳二月十六日公生幼而秀整辛卯選入尚 孝靜翁主封淳原尉階資義今上踐祚錄原從功陞順義翁主實 中宗大王出母淑媛李氏甲辰翁主解媛卒逝公遭 讒搆謫玉果縣未幾 賜環復爵位在 仁宗大王朝恩遇逾常戊申九月遘疾彌留 上遣内醫視藥竟未見效十月十三日卒于第訃聞上震悼賻典有加公處事明律身嚴常曰富貴在天倘容許僞沒世猶愧每以不及先君之喪傷痛遇祀必盡哀敬以事親者待諸兄以律身者莅其家豪奴畏慴母夫人居順天村墅掣肘三載曠省遂忽忽不樂雖痛寬遣實疚于懷病仍日篤易簧再三呼母夫人聞者隕涙生一子名天啓尚幼十二月十三日葬于楊州海等村壬坐丙向之原嗚呼富貴非公原也以公之才之美從事詩禮由科第取身其所施設夫豈淺淺天靳其壽在世亦短可勝惜哉 嘉靖二十七年十二月 日 弘文館 應敎 知製敎 南應龍 誌 순원위공휘의정묘지(淳原尉公諱義貞墓誌) 공의 휘는 의정(義貞)이요, 자는 숙간(叔幹)이며, 성은 조씨로 순창의 망족이다. 조는 증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휘 지강(智崗)이요 고는 경주부윤 휘 침(琛)이며 원조(遠祖)도 다 세상에 알려졌고 비는 우씨(禹氏)로 돈녕부 도정윤공(敦寧府都正允功)의 따님이다. 신사년 二월 十六일에 공이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용모가 빼어나고 정숙하더니 신묘년에 선택되어 효정옹주(孝靜翁主)의 짝이 되어 자의계순원위(資義階淳原尉)의 봉작을 받고 금상(今上)이 등극(登極)하매 원종공(原從功)으로 순의(順義)에 올랐다. 옹주(翁主)는 중종대왕의 따님으로 어머니는 숙원이씨(淑媛李氏)인데 갑진년에 옹주는 산고(產苦)로 별세하고 공은 참소를 당해 옥과현(玉果縣)으로 귀양갔다가 미구에 사면복작(赦免復爵)되었다. 인종(仁宗)때에 은우(恩遇)가 극진하더니 무신년 九월에 병을 얻어 오랫동안 신고하니 주상이 내의(内醫)를 보내 약을 썼으나 마침내 효력을 보지 못하고 十월 十三일에 세상을 떠났다. 주상이 부고를 듣고 대단히 슬퍼하시며 융숭한 부전을 하사하시었다. 공이 처사에 밝고 자신에 엄하여 항상 말하되, 부귀는 하늘에 있는 것인데 어떻게 간사와 거짓 따위로 용납하리오. 하여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고 항상 선군(先君)의 상사에 미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제사 때에는 반드시 애경(哀敬)을 다 하였다. 어버이를 섬기던 마음으로 모든 형을 대접하고 몸을 단속하여 집안에 임하니 억센 종들이 두려워하였다. 순천(順天) 촌야에 계시는 모부인(母夫人)을 자유가 없어 三년동안이나 문안을 못하여 앙앙불락하더니 끝내 그 한이 사무쳐 드디어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다. 운명할 때에 자꾸만 모부인을 부르니 듣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 천계(天啓)는 아직 어리며 十二월 十三일에 양주(楊州) 해등촌(海等村) 임좌병향지원(壬坐丙向之原)에 안장하였다. 아! 부귀는 공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으니 공의 아름다운 재주로써 시례(詩禮)에 종사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진취하였으면 그 베푼 공이 어찌 천박하였겠는가. 하늘이 그 수를 아껴 세상에 있는 날이 또 짧으니 가히 애석하도다. 弘文館 應敎知製敎 南應龍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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